안녕하십니까. 제가 지금 찾은 곳은 호남의 명문사학 조선대학교 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0년 전 자신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희생하며 가족과 동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바로 고 서정민 박사가 강단에 섰던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서 박사의 죽음 이후 시간강사의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한 일명 '강사법' 제정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국회에서 세 차례나 유예되던 끝에 결국 입법 되었고, 작년 8월부터 전국적으로 각 대학마다 시행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 서 박사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강사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당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시간강사 해고 사건이 일어났었던 곳 역시도 바로 이곳 조선대 입니다.
도대체 이 곳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어 왔고, 지금의 현 상황은 어떨까요. 현재 학교 측이 비정규교수노조와의 단체 협약 불이행으로 노조 측에서는 코로나 19 확산 위험에도 불구하고 무더위와 사투까지 벌이며 학교 본관 중앙현관에서 약 290여일 넘게 철야농성 중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직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선대분회 정재호 분회장을 만나 보겠습니다.
분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무더위 속에 고생 많으십니다. 지금은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많은 시민들도 궁금해 하고 있는데, 혹시 지금의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잘 아시다시피, 조선대는 일제하에 전개된 민립대학설립운동에 대한 정신 계승을 표방하면서 조선이란 명칭과 함께 민립대학으로 출발하였지만, 설립 이후 30년여 동안 족벌경영진의 지배와 함께 사유화라는 흑암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1987년 6월민주항쟁과 학원민주화운동을 통해 족벌경영진을 퇴출시키고 구성원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민주대학으로 재탄생하게 되면서 민주대학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민주대학의 명성을 지닌 조선대에서 강사의 처우 및 근로조건 또한 당연히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지만, 현실은 여전히 타 대학들과 같이 별반 나아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강의료의 경우, 현재 조선대는 호남지역 사립대학들 가운데 가장 높지만, 이는 2010년 이후 노동조합의 4회에 걸친 파업투쟁과 1년 이상의 장기농성, 노조 집행부의 2번에 걸친 단식농성 등이 만들어낸 성과이지 민주대학의 역사와 명성이 제공한 혜택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8월 강사법 시행과정에서도 조선대는 노사가 합의한 강사임용규정을 무시한 채, 학교 측이 입맛에 맞는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며, 전국 최다 시간강사 감축(해고)이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단체협약을 체결해 놓고 단체협약을 준수하지 않거나 불이행하는 등 갑질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이렇듯 민주대학으로 거듭난 조선대의 근로조건 및 노사관계가 타 대학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한국의 대학사회가 민주화의 시기를 지나 신자유주의적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민주화 가치보다 기업 가치를 추구하는 대학의 기업화 논리와 정책을 우선 시 했습니다.
그 결과 민주화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기업 가치로 대체되었습니다. 조선대 역시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민주화의 가치보다 기업 가치를 우선했고, 대학자치운영협의회(약칭 대자협) 등 민주적 제도는 껍데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작년 8월 강사법 시행으로 ‘시간강사’가 군사정권 이후 약 40년만에 극적으로 고등교육법상 ‘교원’ 지위를 되찾으며 ‘강사’ 신분으로 전환되었는데, 이제는 과거보단 경제적으로도 생활이 좀 더 안정된 것이 아니었나요?
(답변) 언론에서는 강사문제를 해소하는데 ‘개정 강사법’이 문제라고 보도하고도 있지만, 정작 대학들은 현재 ‘개정 강사법’ 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강사법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법제도가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 측의 ‘강사법’ 무력화 문제를 먼저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강사법’ 제정 취지는 강사의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이기에 당사자들은 당시에 법이 시행되면 마땅히 강사의 고용이 안정되고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이런 기대감과는 달리 대학 측은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은커녕, 강사법 시행에 따른 대학의 재정부담 가중을 주장하면서 강사 규모 축소, 교양교과목 축소 등으로 대응했습니다.
이처럼 강사법은 대학의 법 무력화 행위로 인해 비정규교수의 총 고용수는 줄어들고 강사 개인당 담당강의 시수 역시 적어지는 등 법적 개선 효과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랬군요. 많이 안타깝습니다. 10년 전 고 서정민 박사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시민들도 큰 충격에 빠졌던 그때의 기억들이 잠시 떠오릅니다. 그 후 국내 대학들 중에서도 특히 조선대 만큼은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다들 예상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시간강사가 해고되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죠?
(답변) 2010년 5월 시간강사 신분이었던 서정민 박사의 자결 사건으로 조선대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강사문제 법제화에 불을 지폈으나 정작 강사법 시행에 앞서 진행된 대량 감축(해고)으로 전국 최다 감축이라는 악명까지 떨쳤습니다.
조선대는 교육부의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국내 메이저 대학으로서는 유일하게 가장 상위등급 ‘자율개선대학’ 선정에서 탈락하는 수모까지 당하며, 이에 대한 충격으로 총장이 퇴진하는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조선대는 ‘강사법’ 제정취지 및 목적을 외면한 채, 오직 ‘자율개선대학’ 탈락 위기를 모면하고자 가장 약자인 시간강사들을 대량으로 희생 제물로 삼은 것입니다. 학생들 또한 다수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를 위한 대량감축(해고)이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대량의 강사해고를 막기 위해 2010년, 2012년, 2013년, 2017년에 걸쳐 파업투쟁을 벌여왔으며,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는 1년 이상 철야농성투쟁, 23일간 단식농성을 통해 2018년도 단체협약을 극적으로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측은 또다시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는 갑질행위와 부당노동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강사법 시행 후 양 측이 극적으로 단체 협약에 성공하며 최종 승인 도장까지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학교 측은 지금까지도 오랜기간 이행 의지가 전혀 없는 걸까요? 당시 구체적으로 합의된 내용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2018학년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의 대원칙은 대학의 재정적 어려움을 이해하여 노동조합은 임금을 동결하고 강사법이 시행될 즈음에 대학 측은 강사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노사는 2018년도 임금 동결, 고용안정을 위해 전임교원의 초과잉시수(18시수 초과강의시수) 중 300시수를 강사들에게 배정하고, 구조조정으로 인해 폐과된 강사 구제조치, 노조 강좌개설권 부여 등에 최종 합의하였습니다.
이 합의 과정은 1년 이상 진행되었고, 충분한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대학 측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대가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되지 못하면서 학교 위상에도 큰 타격을 입었고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큰 어려움에 처했을텐데, 단체협약이 이행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강사 관련 지출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니면 분회장님 생각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답변) 대학 측은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은 이유를 몇 가지 밝히고 있는데, 첫째로 현 총장은 자신이 서명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협약 이행 의무가 없으며, 둘째로, 비정규교수노동조합에게 교과목 개설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교권침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학 측의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까요. 원래 단체협약 체결권은 사립대의 경우 법인 이사장의 고유 권한이지만, 총장에게 위임하여 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총장이 바뀐다고 단체협약 준수 및 이행의무가 사라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교수나 노동조합에게 강좌개설권을 부여하는 것이 교권침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개설자격을 확대하는 것일 뿐 타 대학들도 인정하고 있고, 조선대에서는 2008년도 노사합의 이후 지금까지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교권침해를 운운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국내 대학 중 강사들의 고용안정과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범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대학들은 없나요?
(답변) 최근 조선대가 공영형 사립대 추진에 상호협력을 맺은 상지대에서는 강사법 시행 당시 강사를 전혀 축소하지 않고, 모든 시간강사들을 교원신분 강사로 다시 임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통령 공약인 ‘공영형 사립대’로 가기 위해 앞으로 학교 측이 강사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어떤 노력들이 뒷받침되어야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학교발전과 사회기여를 위해 더욱 노력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공영형 사립대’ 프로젝트는 한국 대학의 85%가 사립대학인 상황에서 과도한 사립대학 비율을 낮추고 멈출 줄 모르는 학원 비리를 척결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자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가 공동으로 제안한 사학개혁방안으로 제19대 대통령선거 공약사항이기도 합니다.
공영형 사립대 프로젝트는 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수적으로 구성원의 자발성과 자율성에 기반한 공동체적 결정과 책임을 요구합니다. 대학은 강의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고 교원 신분이 부여된 비정규교수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은 비정규교수들을 배제하는 차별적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넘어서서, 개방과 참여 민주주의 공간을 조성해 반드시 비정규교수도 참여대상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국내 최초의 민립대학 정체성에 맞게 비정규교수를 대학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개방적 참여민주주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최근 사법부 고위직을 지낸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께서 조선대 이사장으로 오셨는데, 그분의 과거 행적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다수 판결과 다양한 소수 의견들을 내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학 교육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조선대 비정규교수 대표로서 신임 이사장님께 크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답변) 학교법인 조선대학교 이사장으로 선출되신 김이수 신임 이사장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법률전문가로 살아오신 오랜 경륜과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 말씀대로 좀 더 민주적이고 차별없는 대학 세상을 열어갈 것을 기대합니다.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노사가 합의해 놓고 체결을 거부했던 대학 측의 시간, 단체협약을 체결해 놓고 이행하지 않으려는 대학의 행태들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느낀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회질서의 기본인 계약과 법질서를 등한시하고 노사 간 평화를 깨뜨리는 무너진 준법의식, 약자를 짓누르고 갑질하는 힘의 논리가 교육기관에서 조차도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병리적인 것들을 거두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분회장님, 바쁘신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학교 측과의 문제가 깨끗이 잘 해결되었다는 소식부터 전해져서 코로나 19와 올 여름 무더위까지 한꺼번에 동시에 날려 보낼 수 있길 주위 많은 시민들과 함께 응원하며 기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선대분회 정재호 분회장과의 인터뷰였습니다.